안녕하세요? '별우산'입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인간이 왜 사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기왕 태어난 거 (우리의 선택권이 없이 세상에 숭뿡 태어나 버렸다.) 왜 사는지는 알아야 살아갈 내적 동기가 생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던 것 같아요.
저는 일단 남들은 어떻게 사나? 어떤 인생을 사나? 어떤 삶이 성공적인가? 어떤 삶을 롤 모델로 삼아야 하나? 주변 인물들, 책속의 위인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남의 삶을 들여다 봤습니다.
일단 제가 내린 결론은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산다. 아니 나는 행복을 위해 살겠다. 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선성설인지 선악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선하게 태어났냐, 악하게 태어났냐가 문제 되지는 않는다고 나름 개인적인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일단 태어난 거 행복하게 살다 죽어야 하겠다. 생각하고 그렇다면 행복이 뭐냐?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만족하고 죽었는가? 나의 행복은 무엇인가?
하필 이런 심도 깊은 고민이 초등학교 4학년 중간고사인지 기말고사에 곂쳐서 진짜 고심고심했던 기억이 나네요. 시험 공부는 해야하는데(저는 1주일 정도 벼락치기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인생의 중요 노선이 결정이 안나는 상황에서 시험공부가 손에 잡히질 않았던 거죠. 진짜 몇 날 몇 일을 고민하고 빨리 답을 얻으려고(얼른 매듭을 지어야지 다음 진도가 나갈테니) 고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름 결론에 도달했죠. 기왕 태어난거 세상에 공헌하고 죽자.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살다가 가자. 기왕에 태어난거 세상에 도움이 되고 죽어야 되지 않겠는가?
저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서 밖에서 뛰어놀지도 못했고, 먹으면 배아프고 설사하고, 늘 골골대는 허약 체질이었어요. 커서 사람 구실 할까? 싶을 정도로 몸이 약해서 부모님이 저한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셨죠. 그나마 책을 좋아하고 아빠의 극성스러운 조기 교육으로 공부를 좀 잘 했어요. 그러니 의사가 되어서 아프리카나 가야지. 싶었어요. 사실 아프리카 가서 춤추고 노래하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꽁(공짜)으로 그렇게 얹혀 살 수는 없으니 그나마 할 줄 아는 공부로 의대가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의사로서 필요한 도움이 되고 그들 공동체에 합류하고 싶었죠. 아마 슈바이처와 마더 데레사의 모델을 합쳤서 저의 롤 모델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줄곧 그 꿈을 향해 매진합니다.
저의 생활기록부에 보면 장래희망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한결 같아요.
지금 나이는 43. 세상을 살아오며 저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 봤습니다. 인간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그 결말은 어떠한가 궁금했기 때문이예요. 다행히 운이 좋아서 정말 많은 곳에서 살아보고 많은 사람들을 접해보고 많은 경험치를 데이터베이스로 축척할 수 있었죠.
제가 지금까지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완벽하네 싶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참 재미있고 신기한 일이예요. 거의 완벽에 가까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사람도 단 한 두가지 피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같은 어려움과 시련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어요. 너무 신기한 일이예요. 그 것만 없으면 완벽할 것 같은데 누구나 '그 것'이 있었어요.
정말 예쁘고 착하고 신앙심도 좋은 수학교수 선생님은 자식이 없어서 한국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계셨고, 딸 아이의 양육에 최선을 다했지만 늘 자신없는 마음 한 구석 불안함과 아픔이 있었어요.
자식이 4명이고 정말 신앙심도 좋은 교수님 한 분은 집에 초대해서 가정 방문을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큰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선천적 장애 아동이였어요. 그 아이가 커서도 홀로 독립할 수 있도록 조금은 엄격하게 대하고 왠만한 일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립심을 키워주려고 애쓰며 일반아이 이상의 평등함을 가정의 룰로 삼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한 친구는 정말 예쁘고 야무지고 한데, 장애를 가진 오빠가 있어서 늘 오빠에게 관심을 빼앗기고, 부모님이 안 계실 장래에는 오빠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살아가는 친구가 있었어요.
저 가정은 정말 행복해 보이고,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이는데, 그 뚜껑을 열어보면 기가 막힌 사연들 또는 가슴 한 켠이 아리는 사연들이 하나씩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완벽하고 완전한 행복속에 살아간다면 여기는 이미 천국이지 현세가 아니겠죠? 그렇다면 과연 현대사회에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가슴 아픈 일이 없고, 속상한 일이 없고, 어려움이나 시련이 1도 없는 완벽하고 완전한 상황의 연속이 행복인 것일까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저 사람의 삶은 완벽할까? 하고 계속 남의 삶을 주시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삶을 40년 이상 살아왔고, 남의 삶을 수십년 쳐다보면서 지금와서 드는 생각은 행복이란 내 인생의 흐름을 알아보고 그르침이나 과함이 없이 만족한 상태에서 그리던 삶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과정과 그 완성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너무 추상적인 표현이기는 하죠? ㅎ
내 인생의 흐름을 알아본다는 것은 일단 내가 어떤 삶을 그리고 있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내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하겠다는 큰 그림 속에서 오늘날 나는 어디에 와있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인지하고 현지점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 일생의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 주위의 풍파와 앞으로 닥칠 풍파, 선한 영향력과 도움, 고비와 시련을 어느정도 가늠하고 내가 지나치게 놀라거나 과하게 기대하지 않는 순리속에 자신을 내맡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도사도 아니고 이게 가능하다고? 하실 분들도 계실텐데요. ㅎ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자고로 인생에 있어서 40을 불혹의 나이라고 했습니다. 불혹이라 함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상이나 벌에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중심이 잡히는 것이 행복의 기초적인 첫 번째 요소 같습니다.
그르침이나 과함이 없이 만족한 상태 또한 중요한 행복의 요소 같습니다. 보통은 남들과 비교해서 행복의 반대말인 불행을 자초합니다. 제가 남미에 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그들의 행복지수가 너무 높다는 겁니다. 하루에 1달러만 있어서 온 식구가 먹고 살 수 있고, 그냥 행복합니다. 하루 한 끼 식사만 해결되어도 오늘의 행복을 다 가진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내일 걱정은 정말 내일합니다. 사고로 팔이 잘려도, 다리가 잘려도 남은 인생을 웃으며 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태어날 때부터 한 쪽 다리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는데 한 쪽 다리로 콩콩 뛰어서 달리기를 얼마나 잘 하는지 모릅니다. 나는 다리가 하나 밖에 없어서 평생 앉아만 있을 수 밖에 없어~ 하고 은둔하는 장애 아동으로 자라지를 않더라구요. 저는 팔 다리 멀쩡한데도 늘 쉬어야 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아이로 컸는데, 제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물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고 부유하고 안정적인 가정에 태어나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도 내가 그 속에서 낙담하고 절망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속에서 크게 웃고 이겨낼 수 있다면 나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일 수 있고, 그 새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습니다. 만족이라는 것, 나 스스로를 만족하게 하는 자족이라는 것의 결정키는 나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들어보지 못했고, 내 머리속에 그려보지 못한 이 새로운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오직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놀라운 일이지요?
그리던 삶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과정과 그 완성이 인생의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결론지어지는 어느 한 순간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는 보통 결과물, 성과물에 모든 시상을 하고 등수를 매기고 값을 쳐줍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마지막 순간은 정말 단 한 순간 뿐이라는 겁니다. 우리의 매일이 모이고, 수고와 눈물과 기쁨과 감격이 쌓이고 흘러가서 마지막 그날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 마지막 한 순간만 행복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잖아요. 내 오늘을 바쳐 그 날이 만들어지고, 내 오늘이 완성되어야 내일이 오는 것처럼 우리의 오늘은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합니다. 내가 내 오늘을 소중하게 보내고 우리의 그날을 위한 퍼즐 한 조각으로 완성해낼 때 오늘의 행복은 그 값을 충분히 하고 남습니다. 충분히 박수받고 사랑받아 마땅한 우리의 오늘이라는 겁니다. 그르침이나 과함이 없는 만족한 상태에서 오늘의 값을 다해낸 오늘을 수집해봅시다~ 안 행복할 수 있을까요?
얼렁뚱땅 개똥 철학으로 행복을 정의해봤습니다. 개똥 철학을 머리에 담았다고 인생이 수월해지고 삶이 간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흔들리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더이상 방황하고 뭐가 맞는 것인지, 인생에서 헛삽질을 덜 할 수 있는 로드맵이 잡히는 것입니다.
아직도 40년 살아봐서 인생을 잘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되면 인생을 명확하게 알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고 쉽고 투명한 것도 아니었어요. 다만 그렇다고 그렇게 복잡하고 끝없고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당장 오늘 먹을 땟거리(끼니를 때울 먹을거리)가 없는 이에게 "가서 따뜻한 방에 배부르게 먹고 편안히 쉬어라"고 하면 안된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살다보면 정말 난감한 일, 기가 찬 일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 난관에서도 평온하고 자족하며 유유히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사도 하기 힘든 일이겠지요. 그런데, 안달복달하고 속에 열이나고 뒤집어진다고 그 난관이 해결되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닌 것을 우리 모두 압니다. 내 인생의 흐름을 알아본다는 것! 나는 내 꿈을 향해 길가고 있는 사람이고, 이 난관도 지나갈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저라고 별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아나서 보는 거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서 오늘의 퍼즐을 만들어가 보는 거죠. 저는 성당 다녀서 신을 믿습니다. 이루시는 분은 그분이시라는 말씀이 성경에 여러번 나옵니다. 나의 신이 나를 세상에 나게 하고 뜻을 정해서 나를 내보냈다면, 분명 그 뜻이 이루어지게 되어있고, 나는 그 여정 중에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완성이 이루어질때까지는 나는 길가게 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오늘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괴로운 일이 생기고, 낭떠러지 않는 절망감이 나를 덮칠지라도 오늘이 나에게 끝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내일이 오고 그 다음날이 채워지고 매일의 퍼즐 조각이 완성되어야 마지막 날 신이 나에게 요구하는 완성작품이 맞춰질테니까요.
여러분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시는지 모르겠지만, 각자의 인생의 행복이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보시고, 그 답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기왕에 태어나 삶을 살아가는데, 우리 인간은 그 존재만으로도 존엄하다고 하는데, 그 소중한 생명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꽃피우고 갑시다. 당신은 아름답고 저도 아름답습니다.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다 가고 싶네요.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별우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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