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우산] 노벨문학상 받은 한강 작가의 '바람이 분다, 가라' 도서 리뷰
안녕하세요? '별우산'입니다~
설에 집에 가니까 엄마가 책 한권을 줬습니다. 앞집 아줌마가 노벨문학상 받은 책이라길래 사서 읽었는데 도저히 무슨 소린지 몰라서 엄마 주더랍니다. 엄마가 조금 읽어보니 무슨 소린지 몰라서 저보고 읽어보라고 합니다.
아빠도 무슨 내용인가 궁금하다고 저보고 읽어보고 알려달랍니다. ㅎㅎ
자기들이 읽어보면 되지.. ㅎㅎ
저도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 받은 한강 작가 이름은 들었고 너무 자랑스러워서 책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설 연휴에 이렇게 책이 저한테 전달되어서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읽는 동안에는 이 책이 그 노벨문학상 받은 바로 그 책인줄 알았더니,
나중에 찾아보니 노벨문학상은 어떤 작품 하나가 받는 작품상이 아닌 어느 작가 한 분을 선정하는 작가상이었습니다. 어떤 수상작이 있는 것이 아닌 수상 작가가 있는 셈이지요.
예전에 듣기로는 한국의 문학이 수준이 떨어져서 여태 노벨문학상을 못 받은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서와 문체를 외국말로 담아내고 번역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그 작품성을 다른 나라 언어로 담아내지를 못해서 수상을 아직 못하고 있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한강 작가의 작품은 적어도 영어로 대부분 번역이 되어 있다는 말이 되겠네요.
바람이 분다, 가라
이 책은 책 표지도 내용도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한 1/5 읽었는데 아빠가 물어봅니다. "무슨 내용이고?"
저의 대답 "몰라."
한 2/5 읽었는데 아빠가 또 물어봅니다. "뭐라하노?"
저의 대답 "몰라."
엄마 왈 "니도 모르겠제? 준영이 엄마랑 나도 무슨 소린지 몰라서 쪼금 읽다가 말았다."
한 1/3 읽었을 즈음 아빠가 또 물어봅니다. "무슨 내용이고?"
"몰라, 누가 자살했는데 사유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복잡하네."
이제 저의 도서 리뷰를 시작합니다.
2024년 노벨문학상 받은 작가의 작품을 아무 나부랭이가 평가하려고 하니까 건방진 것 같은데 ㅎㅎ 그래도 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시대니까 저 하고 싶은 말을 긁적여봅니다. ㅎ
하두 엄마 아빠가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다고 하고,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하고, 그 대단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니까 제가 너무 비평가 입장에서 독서를 시작해서 재미가 없었어요. 한강 작가의 문체도 제 취향이 아니었구요. 저는 둘러둘러 장식된 표현과 허울을 귀찮아 하는 편이라 문체가 솔직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니 좋다! 하면 좋은거지.
니가 있는 세상은 수평선 위에 한 줄기 빛에 반사되는 바다 파도 방울 속 흩날리는 신선한 바다내음과 3월의 봄기운이 가져다 주는 ~~~
저는 저런 문학적 기법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ㅎ
그런데 한강 작가는 정말 섬세하고 그렇다고 군더더기는 없는 정갈하고 복잡한 묘사의 대왕이었습니다.
저는 제 취향이 아닌데도 책 내용이 뭔지 얘기해줘야해서 할 수 없이 그 흐름에 따라 갔지요.
표현 하나하나를 다 그려서 장면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는 작업이 복잡하고 귀찮았어요. 시제가 수시로 바뀌고 주인공이 연상하는 인물에 대한 생각 조각들이 수시로 교차되어서 복잡했어요. ㅎ
정말 책의 2/3 이상을 읽는 동안에도 배경을 그리고 있어서 저는 계속 작가가 제공하는 무대를 만들고 시상을 따라가고, 인물을 재현하는데 시간과 힘을 다 썼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지? 하는 작가의 의도를 찾아서요.
그리고 이 책이 왜 노벨문학상을 받은 거지?(이 책이 노벨문학상 도서로 선정된 것이 아니라, 한강 작가 본인이 노벨문학상 작가로 선정된 것입니다. 책이 아니라 사람이 선정된 것임. 이 책을 다 읽을때까지 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는 문학적 비평의 눈초리로 책을 따라갔습니다.
제가 그래도 서울 올라온지 3년째. 책에 등장하는 수유리도 가보고 수유리 김밥도 먹어 본 입장에서 장소적 배경은 반가웠어요. ㅎ
이 책의 대강의 스토리는 이래요.
이정희와 서인주는 둘도 없는 친구사이입니다. 정희는 남아선호사상이 심한 가부장적 가정에서 여유없는 빡빡한 가정 형편 가운데 굴러가는 챗바퀴에 수긍하며 삶을 살아가는 학생이었고, 인주는 외삼촌과 단둘이 살아가는 사연있는 학생이었죠. 이 둘이 친구가 되어 빡빡한 삶 속에서 그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숨통이 틔어지는 학창시절을 보냅니다.
인주의 외삼촌 이동주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천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요. 그의 세상과 동떨어진 삶의 호흡이 정희에게 매력적으로 끌리고 그 둘은 첫사랑 같은 가장 깨끗하고 아름답고 순수하게 비치는 그런 사랑에 젖어갑니다.
외삼촌은 희귀병이 있던 사람이라 어느 순간 돌아가시고, 장대높이뛰기 선수였던 인주는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저는 큰 부상을 당하고 선수의 꿈을 접게 됩니다.
인주는 정선규라는 인물과 결혼하여 민서라는 딸을 낳게되고, 이혼 후 양육권 문제로 힘들어하다가 외삼촌의 화풍으로 삼촌의 작품을 답습하여 미술품들을 냅니다.
얼마뒤 인주는 설악산에서 절벽에 떨어져 죽는 사고사를 당합니다. 그의 죽음은 자살로 세간에 알려집니다.
친구인 정희는 인주의 죽음이 자살일리 없다고 믿고 친구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나섭니다.
강석원이라는 인물은 인주의 일생과 작품세계를 담아 책을 출판했고 미술관을 오픈하여 인주를 영원히 역사에 남길 계획을 추진합니다.
정희는 석원이 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시키는데 반발하여 본인이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겨내겠다는 각오로 백방을 수소문하고 사건의 전말을 파헤칩니다. 정희의 신념은 인주 같이 삶의 의욕이 강하고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 죽음을 스스로 택할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본인 같은 사람이 죽음을 열망하면 했지, 인주는 그럴리가 없고 그래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솔직히 정희 본인은 자살 기도도 여러번 한 이력이 있고, 세 번의 유산과 사랑없는 결혼생활과 이혼, 사랑했던 첫사랑 이동주의 죽음 등으로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서 죽음을 가까이 생각하지만, 인주는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과연 누가 옳을까요?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든 사고사이든 중요치 않고 본인이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인주를 영웅으로 만들어 이 세상에서 그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그 존재가 영원히 빛나는 장치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인 강석원의 삶의 방식이 정답일까?
내 친구는 삶을 사랑했고,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나는 못나고 죽음의 그림자를 끼고 살지만, 내 가장 사랑하는 친구는 늘 빛나는 삶의 생명력을 안고 살아가는 빛의 사람이다. 친구의 죽음은 절대 어둠의 장막을 덮을 수 없고 반드시 내 친구는 영원한 빛의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친구의 자살이라는 오명이 그 딸의 미래에 얼마나 아픈 상처로 영향을 미치겠는가? 나는 정의를 위해 내 친구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자신을 던지는 이정희. 그가 믿고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그 신념은 진실일까요?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답고 섬세하고 묵묵했던, 하지만 가장 아름답고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을 해보고 죽은 인물, 바로 이동주. 희귀병으로 누구보다 고통스러웠고 모두에게 짐이 되었던 존재. 그 수고스럽고 짐스러웠던 시간들을 이겨내고 주어진 삶을 꾸역꾸역 하지만 억지로가 아니라 그나름대로 순응하고 자족하며 주어진 운명을 다 채우고 떠나간 인물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고생했고 삶의 굴레와 무게를 견디어냈고 한계와 제한을 감내했지만 그 누구도 가르치지 않고 그 누구도 계몽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 만큼 살다 갔아요. 제 몫 만큼 살다 간 것이지요. 우주의 수많은 별중에 자기 몫을 하고 조용히 소멸하는 그의 행로가 정답일까요?
인주는 느닷없이 삼촌의 유작을 답습하여 작품을 남깁니다. 생전에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삼촌의 작품을 자신의 손으로 따라 남깁니다. 삼촌의 존재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기에 오직 정희만이 인주가 그린 작품이 삼촌 작품을 따라 그린 모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요. 인주는 왜 삼촌의 작품을 따라 그리고, 삼촌의 미술 방식을 재현해서 작품에 담아 냈을까요? 인주는 왜 느닷없이 설악산 미시령을 방문하고 거기서 죽음을 맞이했을까요? 정희가 철썩같이 믿고 있는 생에 대한 의욕이 인주 본인안에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었을까요? 인주에게 너무나 소중한 딸 민서를 두고 이 세상을 떠난 인주의 마지막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요? 무언가 찾아 헤맨 것 같은 인주가 찾는 답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인주가 찾아 헤맸던 것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인생에 있어서 기댈 수 있는 근원적 안식처가 아니었을까요? 인주는 어머니의 옛 친구이자 어머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존재 류인섭을 만납니다. 인주의 기억에 무기력과 인생에 대한 회의로 점철되었던 어머니의 존재. 삶의 물결에 맞서 젊은 날, 동생 동주의 치료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악착같이 세상과 맞섰던 그 패기와 악바리 같던 오기는 꽃잎 같이 흩날려 사라지고 시들어 말라 죽음만을 기다리며 무게없이 나뒹굴어 다니던 엄마의 존재. 그 엄마의 처음이 알고 싶었던 것일까요? 누가 무엇이 우리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고, 나에게서 그 엄마의 존재를 그렇게 빼앗았는지.
인주의 엄마는 설악산 미시령에서 생을 달리했다고 합니다. 엄마의 시작도 끝도 인주는 궁금했을 것 같아요. 나의 엄마. 나의 시작을 만들어 준 엄마. 내가 그토록 갈망하고 그 품에 안기고 보호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 지금은 없는 존재. 인주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자 전부이고 싶고 늘 염원하는 그리움의 존재가 엄마가 아니었을까?
또 인주에게 있어 그 딸 민서는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딸의 양육권을 빼앗겨 민서와 헤어졌을 때, 인주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완전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느낍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존재. 모든 것이 가짜이고 무의미하고 돌이킬 수 없는 끝을 맞이한 인생의 마지막에 당도합니다. 정희는 인주가 그렇게 밝고 의욕적인 사람으로 친구를 그리지만, 실상 인주 자신은 늘 죽음을 갈망하는 내면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에게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의 빛인 딸 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숨쉬는 이유를 빼앗기는 것과도 같은 의미였겠지요. 생을 지탱하는 끈이 끊어지는 시점에 인주는 엄마의 발자취를 찾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엄마의 시작과 끝을 고스란히 찾아 가지고 함께하고 싶지 않았을까? 어느 누구하고도 공유할 수 없는 심장의 공허함을 인간이 아닌 엄마의 흔적이라도 스치며 채워넣고 싶지 않았을까?
인주의 끝이 자살인지 사고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지독하게도 아프게 살다 갔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이 정말 괜찮은 인간이고 빛이고 희망이고 불굴의 장미이기를 바라는 인간이 그 인간의 죽음을 찬란히 조명하고자 죽을 힘을 다합니다.
죽겠다고, 죽고 싶다고 속으로든 겉으로든 두 사람다 절규하지만, 세상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너만은 살아 숨쉬고 생명의 증인이 되길 상대에게 바랍니다.
내가 아니라 니가 대신 내 꿈을 이뤄달라고 내가 포기하고픈 그 생명의 꽃을 너만은 살아내서 꽃피워 달라고 절절히 바랍니다.
정희는 강석원의 무모한 결단으로 불타는 인주의 작업실에서 간신히 탈출랍니다. 죽을 힘을 다해 산소가 있는 쪽으로 기어나와 숨을 쉬고 생명을 간절히 선택합니다. 그토록 삶을 놓아주고 싶어 몸서리치던 그가 그 화재의 순간에 애닯은 탈출을 성공합니다. 그는 그 순간에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생명이 우리한테 있었던게 기적같은 일이고 죽음의 문 틈새에 있는 생명이 언제 닫히든 놀랄일이 아님을. 손목을 칼로 그었던 그 순간들이 내 어리석음이 아니라 원래 인생이 그런 것이라고.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그는 짓이겨진 몸둥아리를 벌레처럼 배로 끌면서 숨 쉴 수 있는 생명의 문을 비집고 나아갑니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납니다.
정희는 원래 저렇게 시니컬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좀 사랑 못 받고 형편 어려운 집에서 빡빡하게 인생의 챗바퀴를 메우며 살아왔지만, 인생을 비관하거나 삶을 하찮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집과 가정에서는 숨막히는 인생의 틈바구니를 채우기 바빴다면, 인주의 집에서 인주의 외삼촌을 만나면서 예술도 인생의 여백도 사랑도 소중함도 평온한 공기도 맛보고 인생의 또다른 장막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커서는 번역가로서 자기 밥벌이도 할 수 있었고, 독립하여 결혼생활도 했었고, 이혼 후 또 자기 생활을 해나갔는데.. 그는 죽음의 문턱에 더 익숙한 사람으로 변해져 있습니다.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 첫 단추는 무엇이었으며 누가 그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까?
저는 한강 작가의 저서 중에 '바람이 분다, 가라' 책 한 권 밖에 안 읽었지만,
한강 작가가 진짜 고달프게 고생 많이 한 사람이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잠깐 봤지만 그의 얼굴에도 인생의 고단함이 담긴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고생을 안해보고 이런 글을 쓸 수가 없지. 고뇌해보지 않고 이런 글을 풀어 낼 수가 없지.
다만, 그의 글이 너무 아프고 고단해서 가슴이 아픕니다. 굳이 저렇게 꼬이고 아프고 희망이 없고 끝이 없는 나락일 필요는 없는데 사지로 내몰리는 수고를 겪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인생에 새겨넣는 모습을 봅니다. 정희가 인생2막에서 정말 따뜻한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정희가 꿈꾸는 이상을 친구에게 씌우려 할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진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아서 본인의 인생 꽃을 피워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는 불가능할 것 같지만 둘이는 가능하고, 함께는 가능합니다. 인생이 원래 그렇습니다.
끝도 없고 돌이키는 길도 없는 나락이라고 단정하지만, 그 만큼 살아본 그 시점에서의 답입니다. 인생 더 살아보면 그 다음 답안이 반드시 있습니다. 저도 43년 살아가면서 이런 얘기하니까 웃길 수 있지만, 나름대로 이것저것 많이 겪어보고 고생 많이 한 사람으로서 하는 말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지금 아는 만큼 그 뇌속에서 어떤 답을 결정짓지 마세요. 인생이 그 뇌안에 다 들어가면 아무나 쉽게 인생 살게? 인생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만만하지도 않습니다. 섣불리 답을 짓지 말아요. 섣불리 누구를 따라가지 말아요. 인생이라는 게 어느 한 사람이 답을 던져 줄 수 있는게 아니예요. 진리가 무엇인지? 정답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인지? 그 답을 알면 모두가 성현이고 도사이게?
몇 마디 떠벌이는 사람들은 다 가짜입니다. 그렇게 몇 마디로 결정나면 인류가 그 긴 역사동안 왜 그렇게 몸살을 앓았겠어요?
그렇다면 답이 없다고 비관할 것인가?
인생이 답이 없는게 아니고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이 정답이 아닌 그게 인생이라는 거지요. 모두가 자기 답을 갖고 자기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고 말하는 겁니다.
죽음에서 새 생명이 꽃 필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겁니다.
저도 잘 모르지만, 인생은 살아봐야 아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날에 논해봅시다.
다만 제가 늘 말하고 해주고 싶은 말은, 지금 끝을 볼 생각을 말라는 거예요. 지금 당신 머리속 그 뇌 안에서 결판을 내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제가 늘 하던 답변이 있습니다.
"그렇게 죽겠다고 하면서 왜 계속 남아있냐?" 하는 질문을 받았어요.
"아직은 내가 어려서 결정을 못하겠으니, 때가 될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내가 힘들면 당신이 떠나시오."
저는 각자가 씨앗을 받았으면 그 씨앗이 심겨져 꽃 피울 정해진 자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각자의 꽃씨가 품고 있는 꽃의 모양과 향기가 있을테고, 그 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개했을 때 세상을 비출 아름다움과 고유의 빛깔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위 틈새에 잠깐 났다가 제 몫을 다하고 지는 꽃도 있을테고, 따뜻한 온실 화분 속에서 오래오래 꽃 피우다 지는 꽃도 있을테고, 살골 깊은 골짜기에 홀로 피었다 지는 꽃도 있을테지만, 제각기 태어난 몫을 다하고 가면 그 뿐.
다만, 섣불리 지금 안되겠네, 끝이네 하고 결정짓지는 말라고 누누이 말씀드립니다.
인생 고달프지만, 그 고달픔 속에서 피는 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여러분도 알고 저도 압니다.
어차피 용쓰지 않아도 죽게 되어있습니다. 굳이 죽음의 문턱을 놓지 못하고 그 문지방을 붙들고 한탄하며 한 세상 살지 말고, 기왕이면 천국의 계단을 향해 생명의 문지방을 가까이합시다. 어차피 우리가 낳아 달라고 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가고 싶다고 일찍 하직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차피 살만큼 살아야 합니다.
기왕 이렇게 된거 찐하게 살다 가요. 좋은 일도 하고, 인생에 웃을 일도 만들어보고, 맛난 것도 먹고, 좋은 사람들과도 어울려보고, 남 덕되는 일도 해줘보고, 남 덕도 받아보고. 어차피 이래가나 저래가나 인생은 흘러갑니다. 기왕이면 내게 주어진 씨앗이 만개하면 어떤 꽃매무새고 어떤 향기고 어떤 빛깔인지 만나보고 가봅시다. 내 인생 이렇게 고달팠는데, 그 고생과 땅방울과 눈물을 먹고 피는 그 꽃이 도대체 어떤 향기일지 궁금합니다. 굳이 내가 다 물주고 햇빛주고 거름주지 않아도 됩니다. 생각보다 살다보면 내가 잘 되기를 바라고, 내게 힘을 주고, 나를 응원하는 나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 덕에 내가 조금 더 자라고 크고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구는 내 덕에 다시 한 번 용기를 낼 수도 있고.
바람이 분다. 가라. 하지 않습니까?
바람이 슬적 불어주고, 다시 한 번 나를 등밀어 줍니다. 못이기는 척 원망도 회한도 던져넣고 훌훌 밀려가 봅시다. 다음 단계로.
어차피 정희가 기어가고 있는 여기는 불바다라 우리가 머물 곳이 아닙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우리는 옮겨가야 합니다.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슬쩍 바람 기운에 밀려가봅시다. 바람이 부는 곳에는 곰팡이가 안 생깁니다. 생명의 기운이 있습니다. 가봅시다!
한강 작가의 작품에서 또 인상 깊었던 점은 그는 문학과 미술, 음악, 희곡 등 다양한 예술을 종합하는 시도를 했다는 겁니다. 저는 아직 수준이 그렇게 못 되어서 전체를 이해하고 그 깊이만큼 작품을 풍성하게 맛보지는 못했지만, 저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니 세계인의 수준에 걸맞는 작품이 다루는 문학과 미술, 음악, 희곡 정도는 섭렵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맛을 나도 공감하고 그 풍부함을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구나.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켜주었습니다.
이상 바람이 분다. 가라. 책 읽은 도서 리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별우산'입니다.
저와 함께 애터미 사업하실 분이나 애터미 제품 사용하실 분은 연락주세요. 환영합니다~
저의 밥집에 여러분들 초대하고 정찬 따뜻한 밥 한끼 나누고 싶습니다.
아시겠지만, 제 밥집은 공짜는 아닙니다. 천원이든 이천원이든 돈 내고 드셔야 해요~ ㅎ
하루 빨리 초대하고 싶네요 ㅎ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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